유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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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남서원 유허비명(汝南書院遺墟碑銘)

 

후손판서 정철 지음(後孫判書廷哲撰)

 

태백산 줄기가 구불구불 남쪽으로 뻗어내려 영양에 이르러서 우뚝 높이 솟은 큰 산은 일월산(日月山)이요. 그 산의 남쪽에 한 봉우리가 있으니 부용봉(芙蓉峰)이라 한다. 그 아래에 일곱 무덤이 있으니 그중 하나가 우리 시조 영의공(英毅公) 휘(諱) 민(敏)의 墓所이다.자손이 설단하고 매년 10월 상순에 제향을 모신다.

 

한 기슭을 넘어서면 여남서원(汝南書院)이 있으니 그 고을 선비들이 공의 덕(德)을 사모하여 조두(組豆)지예로 제사 드린 지가 수백 년에 이르더니 무진년(1868년)에 이르러 회철되니 개연(慨然 감정이 북받치는 모양)히 추모하는 마음이 간절하더라.

 

대저 우리 일가가 삼관(三貫) 영양, 의령, 고성이 번성하여 영의공을 조상으로 모시지 않는 이가 없다. 훈업(勳業 공훈)과 명덕(名德)과 절의(節義)와 문장(文章)이 세세로 이어져서 사기(史記)에 빛이 나니 아 번성하기도 하여라.

 

세상에 전하기로 이 당나라의 안렴사(按廉使)로 일본에 사신으로 가다가 폭풍을 만나 신라의 영해(寧海)에 표박하니 국왕이 남씨로 사성(賜姓)하고 영양을 식읍(食邑)으로 내리니 사성함은 특별한 예우이며(異數) 식읍은 중직(重職)이니 이는 어찌 그 이유가 없으리요. 생각컨대 반드시 큰 공덕이 있었는 듯 하다고 말한 자가 있었는데 그 증빙이 없으니 애석하기만 하다.

 

대저 옛적의 논객(論客)이 반드시 그 세계(世系)를 상고하니(古之論者必先攷其世也) 공의시기(若公之時)는 당나라의 난이 극심하였다.

 

세상의 변란에 임금의 어가도 갈 곳을 잃어버리고 질서가 뒤엉켜 관(冠)과 신발을 거꾸로 놓은 것과 같았으니 공이 외지에 있지 안했으면 모르거니와 하늘이 보내준 바람으로 나라 밖에 있은지라 고국으로 돌아갈 뜻이 없었던 것도 마땅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망향대와 망제단을 노인네들이 지금까지 서로 구전(口傳)하니 그 고국을 돌아보고 임금과 나라를 사모하면서 방황(徊徨)하는 심정이 어떠하였겠는가.

 

그 지조는 미자(微子 은나라의 충신)의 거국(去國)과 같고 그 일은 공자(孔子)의 부해(梓海)와 같고 그 종적은 봉맹(逢萌)이 요(遼)나라의 나그네가 된 것과 같은 것이 공 뿐이리라.

 

대개 시(諡)호란 행적의 자취이니 영의(英毅)라는 시호를 보면 그 어짐을 알 것이요, 자손의 성대함을 보면 그 공덕의 두터움이 먼 후손들에게 보은(報恩)된 것을 역시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아 아름답도다.

서원 가운데에 이전에 강당이 있었으니 체인(體仁)과 경의(敬義)라 하였으나 서원을 폐하니 강당도 손보지 않았으나 조금씩 이나마 손을 보아 오늘에 이른 것은 여러 종인들의 힘이다.

기유년(1885년) 겨울 제향을 마치고 여러 종인이 입을 모아 말하되 저처럼 퇴락하고 위태로운 당(堂)을 지금 바로 고치지 아니하면 신라 고려 이래로 세세(世世)로 지켜온 땅이 침하되어 빈터의 쑥대밭이 될 것이니 우리 선조께서 어찌 내 후손이 있다고 하리요 하실것이니 이에 터를 버리지 아니하고 돌을 깎아서 강당 가운데 세우기로 하고 사인(士人) 정규(廷揆) 정팔(廷八)이 하조(夏朝) 조전(朝戰) 정섭(廷燮)씨의 편지를 가지고 와서 음기(陰記)를 나 정철(廷哲)에게 부탁하니 비록 서투른 글이나마 어찌 이 일을 돕지 않으리요.

삼가 명(銘)하여 말하노라.

공의 옛적 성(姓)은 김(金)이요. 본관은 봉양(鳳陽)인데 천보(天寶)년간에 당나라에 (李唐)벼슬하셨네.

하루 아침에 뗏목을 타고 일본으로 향하니 하늘이 바람을 보내서 신라 경계로 이르셨네.

사성하고 식읍을 영양으로 하사하니 천년이 지나도록 자손이 창성하네

내려온 근원이 멀면 흐름도 기니 높은 덕행은 지금도 잊지 못하겠네.

원우(院宇)는 높고 높아 군은(君恩)과 영광(靈光)짝이 되고 선비는 엄숙하게 강당에 오르도다.

누가 그 옛날 현송(絃誦)하던 곳인 줄 알랴.

울타리는 없어지고 섬돌은 퇴락되고 뜰엔 잡초만 무성하네.

여러 종인들의 생각이 슬퍼하여 돌을 깎고 글을 보내서 명장(銘章)을 구하네.

작고 작은 소자(小子)가 어찌 감히 감당하리요 마는 선열(先烈)의 행적을 대략 기술하여 아득한 뒷날에 보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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