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방성역 유적
상현사(尚賢祠) 변천사(變遷史)

상현사

상현사 사당

상현사 안내문

상현사 전경
본 사우(祠宇)는 광무(光武) 병인추(丙寅秋)에 화산 상현사(花山 兩賢祠)를 성사(成祠)하여 해운당 남계명(海雲堂 南季明), 격암 남사고선생(格菴 南師古先生) 양현(兩賢)을 배향(配享)하여 오던 바 1959년 을(己亥)에 중랑장남영번공(中郎將南永蕃公)을 주벽(主壁)으로 하여 양선생(兩先生)을 배향(配享)하면서 상현사(尚賢祠)라 칭(稱)하였다.
중랑장공(中郎將公)의 휘(諱)는 영번(永蕃)이요 본관(本貫)은 영양(英陽)이다. 공(公)은 고려조 유신(高麗朝 遺臣)으로 내시원신호위보승장랑장(內侍院神虎衛保勝中郎將)시(時) 지켜 본 왕씨(王氏)의 실정(失政)으로 려운(麗運)이 장(將))흘함에 일조(一朝)에 호연(浩然)의 뜻이 있어 기관존해(棄官尊海)하여, 홍무을사(洪武乙巳 1425년)에 졸어울진(卒於蔚珍)하시니 사민(士民)이 모정헌(慕靖獻)의 의(義)를 지키신 충의지사(忠義之士)라 하였다.
해운당 선생(海雲堂 先生)은 휘(諱)는 계명(季明 1488~1545)이요 中郎將公의 손(孫)이시다. 해운당(海雲堂)은 호(號)이다. 선생(先生)은 생원(生員)으로 이천훈도(伊川訓導) 시(時) 요승 보우(妖僧 普雨)의 학전(學田)을 양탈(攘奪)하는 횡포(橫暴)를 상소(上疏)하여 중종(中宗)으로부터 한유천재후유일남계명(韓愈千載後有一南季明)이라는 비지(批旨)를 받은 지행(志行)이 고결(高潔)한 현사(賢士)였다.
격암선생(格菴先生)의 휘(諱)는 사고(師古 1509~1572)요, 중랑장(中郎將)의 현손(玄孫)이시며 호(號)는 격암(格菴)이다. 선생(先生)의 효행(孝行)은 여남(汝南) 안자(顔子)라 하였고 천문지리(天文地理)와 역학(易學)의 정통(精通)함은 해동강절(海東康節)이라 조야(朝野)에서 칭(稱)하였다. 만년(晚年)에 사직참봉(社稷參奉)과 천문교수(天文敎授)로 지냈으나 진세(塵世)에 부귀공명(富貴功名)을 초탈(超脫)하였으며 오직 심오(深奧)한 천리탐구(天理探究)에 완상(玩賞)하는 것을 낙(樂)으로 삼았다. 선생(先生)의 현묘(玄妙)한 역리(易理)는 물론(勿論)이요 천리안(千里眼)으로 미래사 예언(未來事 豫言)들이 모두 적중(適中)하였으며 태사성(太史星)의 흐름을 보고 본인(本人)의 운명(運命)이 다함을 아셨다 하니 선생(先生)은 열성(列星)의 정기(精氣)를 타고나신 철인(哲人)이요 이인(異人)이시다.
1574년 현령 정구수(縣令 丁龜壽)가 향중사림(鄉中士林)과 함께 격암(格菴)의 높은 학문(學門)과 덕행(德行)을 흠모(欽慕)하여 옥계서원(玉溪書院)을 창건(創建)하고 선생(先生)을 배향(配享)하였으며 그후 몽천사(蒙泉祠)와 향현사(鄉賢祠)를 거처 상현사(尚賢祠)에 배향(配享)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