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공 묘역

영의공 묘역

묘역 전경

묘 비

석 물

헌성비

지 도

 

mark1.jpg 묘역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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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공 묘역 위치 : 영양군 영양읍 동부리 369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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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공 묘역 조성 연혁(沿革)

 

신라 경덕왕대(755년 이후) - 묘역의 연원

시조 영의공께서 신라에 정착•서세하신 뒤, 유해를 영양(英陽) 일월산(日月山) 부용봉(芙蓉峰) 아래 도항구(道項口) 임원(壬原)에 모셨다고 전승되었다. 그러나 세대가 오래되어 정확한 봉역(封域)은 실전(失傳)되었다.

 

숙종 을묘년(1675) - 설단(設壇)과 재사(齋舍) 창건

후손 금일(錦逸)이 전승된 묘소의 서쪽 기슭에 제단(祭壇)을 쌓아 매년 시월 초 세일사(歲一祀)를 봉행하고, 그 곁에 재사를 세워 제향 공간으로 삼았다. 본 묘소를 확인하지는 못하였으나, 이로써 묘역 봉사(奉祀)의 기틀이 처음 마련되었다.

 

정조대 - 유허비 건립

대제학 휘 공철(公轍) 선조가 영해 축산(丑山)의 유허비음기명(遺墟碑陰記銘)을 지어, 시조의 초래(初來) 자취를 금석(金石)에 새겼다.

 

1958년(무술) 봄 - 진택(眞宅) 확인과 봉릉(封陵)

삼파(영양•의령•고성) 대동보(大同譜)가 완성된 해에, 의령파 후손 상철(相喆)이 종친과 뜻을 모아 의총(疑塚) 남쪽을 발굴하였다. 며칠 뒤 신라대의 대형 석곽(石槨)이 드러났고, 인근에 다른 왕공(王公)의 장지 기록이 없어 시조의 진택으로 확정되었다. 천년 실전되었던 묘소가 비로소 고증•확인된 것이다.

 

1958년 - 묘비•신도비 건립

밀직공파 후손 정섭(貞燮)이 큰 비용을 출연하고 온 종친이 성력(誠力)을 보태어 묘비를 세웠다. 묘비명은 상철이 찬(撰)•서(書)하고, 신도비명은 당대 대학자 문소(聞韶) 김황(金榥) 선생이 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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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공 묘역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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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 참배객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