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씨 발상지 축산

남씨 발상지 축산

유래와 표석

축산전경

지 도

유허비

유 적

 

mark1.jpg 발상지 유래와 표석

 

남씨 발상지 축산을 찾아서

- 오늘에 남은 영의공 유허비와 축산의 기념물 -

 

1. 남씨 역사가 시작된 동해의 포구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축산리는 남씨가 이 땅에서 처음 뿌리내린 발상지로 전해지는 곳이다. 옛 기록에는 이 일대가 신라 때 유린이라 불렸고, 바다와 맞닿은 축산포와 죽도 일원이 시조 영의공 남민이 표착한 자리로 전한다. 오늘날 축산항에 들어서면 동해를 품은 와우산과 죽도산, 포구와 마을이 한눈에 펼쳐진다. 이 바닷가 풍경 속에 남씨 시조의 도래와 정착을 기리는 유허비, 표지석, 대와 단, 옛 지명들이 흩어져 있어 축산은 단순한 항구가 아니라 남씨 역사의 첫 장을 확인하는 순례의 공간이 된다.

 

2. 시조 영의공 유허비와 남씨발상지 표지석

nam3_1_1a.jpg축산의 대표 유적은 남영의공 유허비이다. 이 비는 1798년 정조 때 남씨 후손들이 시조의 표착지와 거주 유허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처음에는 바닷가 반석 위에 건립되었다가 뒤에 현재의 위치인 축산리 와우산 일대로 옮겨졌다. 비문은 시조 남민의 내력, 축산포 표착, 남씨 사성의 유래, 이부동·통사동·망향대

·망제단 등 주변 지명에 담긴 전승을 함께 적고 있어 축산 유적의 중심 기록물이라 할 수 있다.

유허비 입구에는 남씨발상지 표지석이 세워져 있어 이곳이 남씨의 뿌리임을 방문객에게 먼저 알려 준다. 표지석을 지나 산길을 오르면 유허비와 비각, 중수 기념비, 주변 표지석들이 이어진다. 옛 비와 새 비가 함께 전하는 모습은, 한문 금석문 중심의 기억을 오늘의 후손과 방문객이 읽을 수 있는 방식으로 다시 새기려 한 노력의 흔적이기도 하다.

 

3. 망향대와 망제단

망향대는 시조 영의공이 만리 밖 고향을 그리워하며 바다 너머를 바라보았다고 전해지는 자리이다. 죽도산 중턱 일대에 그 자취가 전하며, 대나무 숲과 산길 사이에 남은 표지는 고향을 떠나 타국에 정착해야 했던 한 사신의 회포를 떠올리게 한다. 망제단은 영의공이 해가 바뀌거나 절기를 맞을 때 고향의 조상과 부모를 향해 제를 올렸다고 전하는 곳이다 .

망향대가 고향을 그리는 자리라면, 망제단은 그리움을 예로써 표현한 자리라 할 수 있다.

 

4. 일광대와 월영대

일광대와 월영대는 축산 와우산 일대에서 해와 달을 맞던 자리로 전해진다. 일광대는 동해의 해돋이를 바라보던 곳, 월영대는 달빛이 바다와 포구에 비치던 곳이라는 뜻을 지닌다. 오늘날 표지석은 산길을 따라 남아 있으며, 축산항과 동해의 풍광을 배경으로 영의공이 객지의 외로움을 달래고 마음을 가다듬었을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두 대는 자연 경관과 시조 전승이 결합된 상징적 유적으로, 축산을 찾는 후손들이 가장 쉽게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5. 통사동과 이부동

nam3_1_1a.jpg통사동은 영의공이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오던 통사였다는 사실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전한다. 시조가 축산에 표착한 뒤 처음 머물렀던 마을로 이해되며, 직임의 이름이 지명으로 남은 사례이다. 이부동은 영의공의 당나라 관직인 이부상서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옛 기록에는 김이부동이라고도 하며, 통사동과 더불어 시조가 축산에 거처하였다는 기억을 지명 속에 간직하고 있다.

 

6. 답사 동선과 감상 포인트

축산 답사는 남씨발상지 표지석에서 시작해 영의공 유허비를 살피고, 이어 통사동과 이부동의 옛 지명, 망향대와 망제단, 일광대와 월영대의 표지를 차례로 둘러보는 흐름이 자연스럽다. 표착의 현장, 고향을 그린 마음, 조상을 향한 예, 해와 달이 비추는 동해의 풍광을 함께 읽으면 축산이 왜 남씨 발상지로 기억되어 왔는지 더욱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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