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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남강당(汝南講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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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76호 (1985년 8월 5일 지정)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동부리 552번지 소재

 

여남강당은 남씨(英陽 南氏)의 시조인 영의공(英毅公) 남민(南敏)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여남서원(汝南書院)의 강학(講學) 공간이다. 서원의 옛 건물들 중 유일하게 남아 후손과 지역 사회에 선조의 얼을 전하고 있는 귀중한 역사적 유적이다.

 

1. 연혁 및 역사적 배경

여남서원의 뿌리는 1647년(인조 25) 남민을 배향하기 위해 건립된 향현사(鄕賢祠)에서 출발한다. 이후 1830년(순조 30) 영의공의 후손들과 지역 장로, 유림의 공의를 모아 여남서원으로 승격(陞奉)되었다. 당시 서원은 뒤편에 사당인 영의공사(英毅公祠)를 두고, 중앙에 강당(체인재), 좌우에 동·서재(서재명: 경의재), 전면에 문루인 낙영루(樂永樓)를 갖춘 전학후묘(前學後廟)의 온전한 형식을 띠었다.

그러나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인해 강당과 재사(齋舍)를 제외한 사당과 부속 건물들이 훼철되는 아픔을 겪었다. 현재의 강당 건물은 1920년에 중건된 것으로, 서원의 명맥을 잇고자 한 후손들의 헌신이 담겨 있다.

 

2. 건축적 특징

단독으로 남아있는 강당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를 갖추고 있다. 지붕은 측면에서 보았을 때 '八'자 모양을 띠는 팔작지붕 양식으로, 전통 서원 건축 특유의 단아하면서도 엄숙한 기풍을 잘 보존하고 있다.

 

3. 유허비 및 금석문

강당 건물 후원에는 1909년에 세워진 여남서원유허비(汝南書院遺墟碑)가 비각 안에 안치되어 있다. 비각 상단에는 '여남(汝南)'이라는 웅장한 글씨가 걸려 있으며, 비석에는 “唐按廉使贈諡英毅南公敏遺墟(당안렴사증시영의남공민유허)”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 비문은 규장각 직학사를 지낸 후손 남규희(南奎熙)가 경서(敬書)한 친필로, 남씨 가문의 드높은 자긍심과 역사를 증명하는 금석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