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조열전
송정공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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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공 묘역 위치 |
1999년 묘역정화사업을 통해 정비작업을 마친 송정공 휘 수의 묘역은 영덕군 축산면 칠성리 606번지 일명 꽃밭에 자리잡고 있으며, 묘역 바로 밑에는 화재와 육영루가 잘 단장된 모습으로 손색없는 문화재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묘역 입구에 대형버스 주차가 가능할 정도로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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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공 묘갈명 역문 |
- 통선랑사헌부감찰공묘갈명(通善郎司憲府監察公墓碣銘) 역문(譯文)
공(公)의 휘(諱)는 수(須)요 호(號)는 송정(松亭)이다.
상조(上祖)인 영의공(英毅公)은 당(唐)나라 이부상서(吏部尚書)로서 일본(日本)에 안렴사(按廉使)로 귀로에 거센 풍랑을 만나 유린(有隣)에 기착하여 귀화하니 신라 경덕왕)新羅景德王이 남(南)으로 역성(賜姓)하고 민(敏)으로 개명하여 영양(英陽)을 식읍(食邑)으로 내리었다.
후세에 휘(諱) 홍보(洪輔)가 계시니 고려중대광도첨의찬성사(高麗重大匡都簽議贊成事)로 거듭 영양군(英陽君)으로 봉(封)해지고 3세를 지나 증조(曾祖)의 휘(諱)는 奕이니 검교예빈경(檢校禮賓卿)이요 조(祖)의 휘(諱)는 승고(承顧)이니 종박사정(宗簿寺正)이요 고(考)의 휘(諱)는 영번(永蕃)이니 신호위 보승중랑장(神虎衛保勝中郎將)이요 비(妣)는 강릉최씨(江陵崔氏)이니 부원군(府院君) 휘 안소(諱 安沼)의 아들 유의(有漪)의 따님이다.
공(公)은 서기(西紀) 1395년9월19일 향제(鄉第)에서 나시니 어릴 때부터 영특하시고 기공(氣骨)이 준수하시어 범인과 달랐다.
1917년 공(公)이 23세 때에 이조(吏曹)의 천거로 취재(取才)에 급제함으로써 문선사(文選司)에 등재되었다.
1420년에 호군(護軍) 백린(白璘)의 따님과 혼인하여 장차 조상의 땅인 영해(寧海)에 가정(家庭)을 이루고자 터를 잡았다. 1425년 처음으로 벼슬길에 드시었는데 10월에 부친상(父親喪)을 당하여 벼슬을 내어 놓고 3년을 시묘(侍墓)하였다.
1428년에 관직으로 돌아가 여러 자리를 거쳐 1434년 직장(直長)에 오르고 이듬해에 주부(主簿)로 옮겼는데 1436년 모친상(母親喪)을 당하였다.
1438년에 통례(通禮)가 되고 이듬해에 통선(通善)의 품계에 오르고 또 이듬해에 승훈(承訓) 품에 올랐다가 1441년 판관(判官)에 올랐다. 이듬해에 중직(重職)인 태창수(太倉守)로 옮겼다가 1444년년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로 옮겼는데 이때 公이 감찰 중 수임(首任)이었다.
그 이듬해 9월 용담현령(龍潭縣令)으로 부임하여 한결같이 백성을 사랑하여 선정(善政)을 베푸니 고을 백성들이 송정(松亭)이라 부르며 칭송이 자자하였다. 임기 4년 동안에 누구보다도 잘 다스렸다고 손꼽았다.
1448년 봄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는 관직에 나가지 않고 오직 산수(山水)를 즐기며 살았다.
공(公)이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두었는데 이는 진(莀)이니 별시사직(別侍司直)이요, 둘째는 손(蓀)이니 무과급제(武科及第)하여 현감(縣監)이며, 셋째는 전(荃)이니 진사(進士)이다. 딸은 참의(參議) 윤극(尹兢)에게 출가하였는데 내외손이 많아서 다 기록하지 못한다.
1477년 공(公)이 집에서 조용히 돌아가시니 향년(享年)이 83세이다. 이해 12월12일에 영해부(寧海府) 남쪽 화전을향(花田乙向) 언덕에 장례 지내니 부인 백씨(白氏) 묘가 오른쪽 기슭에 있다.
진사 전(荃)이 내가 일찍이 사관(史官)으로 근무한 바가 있어 묘갈문(墓碣文) 쓰기를 간절히 바라니 글재주 없다고 사양하지 못하여 감히 이 글을 짓는다.
말씀드리자면 공(公)의 바르고 곧음이 흔들림 없고 굽어지지 않으니 타고난 덕이요, 공(公)의 굳세고 맑음이 닳지도 않고 물들지도 않으니 도(道)를 닦음이로다.
별족예문(閥族禮門)에 화락한 소리 노래소리와 어울리니 신이 감동함이요, 문무(文武)를 겸전하여 왕정(王廷)에 드나드니 바른 소리 하는 신하(臣下)로다. 병부(兵符) 차고 용담(龍潭)에 가 고을을 인(仁)으로 다스림이여.
관직 물러나 국사(國事) 잊고 고향 와 누웠으니 몸을 보존함이로다.
어대(魚臺)와 송정(松亭)에서 화류풍정(花柳風情) 즐기는 이 그 누구던고. 아들은 의젓하고 딸은 아름다워 의(義)로써 가르치니 천륜(天倫) 또한 독실함이여, 자손(子孫)이 번성하여 아흔명이라 아 창성함이여.
병들어 쇠약하여 편안히 잠드시니 80 춘추로다. 애통과 영광을 이 글에 풀어서 영원(永遠)을 바랄뿐이로다. 유당(幽堂)의 비(碑)에 공(公)의 행적을 적어서 길이 후세에 끼치고자 한다.

